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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제오페구케가 깨졌다

알숑규's diary 2024. 11. 22. 09:00

지지난주, T1이 리핏을 달성한 이후 이런 말이 나왔었다. "22년 DRX와의 결승에서 패한 건 너무 아쉽지만, 만약 그 때 결승에서 승리했었다면, 이러한 리핏의 영광은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고난이 우리를 더 뭉치게 만들어 줬다." 우승 직후에도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말이었고- 그리고. 어제의 제우스의 계약 종료 소식과 함께 그것이 틀린 말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동일 로스터로 월즈우승을 2번 연속으로 성공한 T1. 이제 그들은 최초의 쓰리핏과 함께 모든 개최국에서 우승하는 대기록을 목표로 설정한 상태에서, '제오페구케'로 네이밍한 역대 최강의 로스터를 잃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닥친 것은 다운 그레이드가 되어 버렸다 평가되는 로스터와, 이전과 달리 느슨해져 버린 팀원간의 연결고리,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불안정한 미래다.

 

이하의 내용은 현재 공개된 기사를 바탕으로, 그저 썰에 기인한 망상에 불과하다. 애초에 기사인만큼 양자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고, 디테일한 이면까지 살펴보지도 못한다.

 

 


 

 

 

애초 T1 프론트는 리핏 이후 어떻게든 동일 로스터를 유지하겠다 발표했고, 신문 전면 광고로 우승을 자축했을 만큼 의욕을 보였다. 더욱이 제오페구케라는 네이밍을 통해 관련된 굿즈를 발매하였을 정도로 재계약에 대해 확신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게 최대한 선수들의 조건에 맞춰주느냐인지, 그들을 최대한 후려쳐 여론에 압박되어 계약 조건을 맞추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랬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산산조각 깨졌다. 5명 중에 4명을 지켰다는 성립되지 않는다. 유리 구슬처럼, 하나라도 깨지면 의미가 없는 기획들인 것이다. 실제로 리핏 이후 인기리에 팔리던 굿즈는 이제 환불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T1이 그리던 미래- 특히 페이커가 떠난 이후의 남은 멤버들이 그 포지션을 잇는 것으로 만들려 한  T1의 계획은 확실하게 박살났다.

 

제우스의 경력은 동나이대에 같은 레벨대의 선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특출나다. 그것은 T1 정도가 되는 팀이 아니면 쌓기 어려운 것이었고, 제우스는 그 T1의 유스 출신이다. 그는 제오페구케 중에서도 인기 멤버로 손꼽혔고, 외부적으로도 '스스로 T1과 페이커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구마유시' 이상으로 '페이커가 없는 상황에서의 T1에서의 프렌차이즈 스타'로서의 가능성이 논해지던 멤버였다. 더욱이 현 시점에서 탑이라는 포지션에서 전 세계에서 제일 잘한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인 그에게, T1에서의 미래는 창창한 것으로 보였다. 늦건 이르건 페이커의 은퇴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고, 그는 병역문제도 해결한 지극히 어린 나이의 선수이니 앞으로 한 두 번 더 월즈를 든다면- 페이커 만큼은 아니라도 소위 역이롤(롤의 역대급 선수 가운데 2번째로 롤을 상징하는 선수)로 불릴 수 있을 정도의 영광도 노릴 수 있었다. 하지만 T1을 떠나면서, 그것은 완전히 깨어지게 되었다. 그를 지지해주던 T1의 팬들은 이제 더 이상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재계약을 발표하기 위한 최적의 타이밍, 최고의 영광의 순간에서, 국내 리그 타팀- 그것도 우승을 경쟁하는 팀으로, 심지어 팀의 전력이 크게 다운될 수도 있는 방식으로 가 버린 것을 곱게 보긴 쉽지 않다.

 

 

 

 


 

T1은 '아마', '확실하진 않지만' 적잖은 확률로 소위 후려친다는 표현처럼 제우스를 떠봤을 가능성이 높다. 그 정도로 이번 사건은 말이 안된다. T1은 돈을 꽤 쓰는 구단이긴 하지만 멤버 전원이 세계최고를 논하는 수준이 된 상황에서, 그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계약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없다. 특히 멤버 유지에 들어가는 자본이 제한된 상태에서, 멤버들의 커리어는 점점 쌓여가 그들을 유지하는 비용이 더 높아지고, 무엇보다 '페이커'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난이도는 더욱 올라간다.

 

페이커는 특별하다. 여러가지 의미로. 롤계에서 손꼽히는 베테랑이자, 고점을 보일 땐 세계 최고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며, 길고 긴 우승 커리어가 지금도 계속해서 쌓여가고 있는, 롤을 넘어선 e스포츠의 아이콘이다. 과거 임요환처럼 게임보다도 더 유명하다는 말을 듣는 선수가 구단 내에서 다시 나타날 줄은 그들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제는 만성이 되어 버린 부상으로 인해 저점일 땐 리그에서도 더 이상 선수생활을 못할 거라는 소리를 듣곤하고, 워낙 강한 압박감과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도저히 관리할 수 없는 멘탈적인 이슈도 간간히 발생한다. 더군다나 종목을 상징하는 걸 넘어 그 이상이라고 평가되는 선수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계약을 후려치지도 못한다. 노장이고, 영향력은 큰데, 고려할 사항은 많다.

 

제오페구케를 브랜드화하여 페이커의 영향력을 다른 멤버들로 이어가려한 시도는 페이커의 이러한 특별함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점진적으로 그의 영향력을 상대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한 선택지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이에 이르는 과정은 그리 짧지는 않다 예견되었을 것이다.

 

제우스는, 페이커에 비견될 정도까지는 아니긴 하지만, 역시 특출나다. 상술했듯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력을 쌓았음에도 나이는 지극히 어리고, 병역 문제를 올림픽을 통해 해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세계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실력을 갖고 있으니, 자연스레 계약의 요구 조건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비단 제우스만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지만, 계속해서 입지가 상승하는 이들은 언젠가는 페이커의 계약조건과 충돌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늦건 이르건 이는 분명히 발생할 일이었고, '페이커와 멤버들'의 존재만으로 그것을 늦추는 것은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T1에선 뭘해도 페이커 이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재도 이를 이유로 낮은 조건의 계약을 제안받는다면 이는 그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리고 팀이 깨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된다.

 

게임 내적인 부분에서도 제우스는 재계약을 망설일 수 있다. 2회의 연속 월즈 우승. 압도적인 기록이며, 이것을 이룬 것은 여지껏 그들을 제외하면 이전의 SKT 뿐이었다. 앞으로 다른 그 누가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T1 그들 자신조차도. 더군다나 제오페구케의 3회 월즈 결승 진출, 2회 연속 우승은 너무나도 화려한 기록이지만 그에 이르는 과정은 결코 순탄지 않았다. 제오페구케 3년 가운데 1년차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정작 월즈에선 준우승을 했다. 2년차엔 페이커의 부상으로 인해 멤버 전원이 곤란을 겪는 상항이 벌어졌고 페이커를 제외한 멤버들의 역량이 내려치기를 당했다. 다행히 제우스는 월즈 결승에서 파이널 MVP를 수상해 그 저평가의 선을 지켜냈지만 결국 스포트라이트는 페이커가 차지했다. 3년차, 메타적응 부적응과 페이커의 부상, 그리고 멘탈 이슈로 리그 내내 힘들었고, 월즈는 간신히 진출했다. 결국 결승에 진출하여 승리했지만, 승리의 결과는 마찬가지로 페이커에 대한 찬양이었다. 끝이 좋아서 다 좋았다라고 말하기엔 불안을 겪는 시기가 너무 길었고, 페이커가 있는 상황에서 그는 T1에서 그는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이는 T1이라는 팀의 소속에 대해 불만을 삼으려면 삼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억지에 가깝다고 보지만. 이전의 문단에서 페이커 때문에 경력이 내려치기는 선수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가 T1 내에서 어떻게 커리어를 쌓아도 페이커를 뛰어넘을 수 없고, 페이커가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선 결국 T1이라는 둥지를 떠나야 한다. 어차피 2연속 월즈 우승이라는 기록은, 상술했듯 다른 그 누구도 깨기 어려우니, 제우스가 앞으로 쌓을 수 있는 커리어는 한해 라이엇이 주관하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는 그랜드슬램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 목적하에서라면, T1은 그렇게까지 적합한 팀은 아니다. 본인이 어딜 가서도 우승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자신한다면 말이다.

 

일단 결별만이 발표되고, 어디로 이적할 지에 대해 드러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소문에 따르자면, 제우스가 제시받은 계약은 T1이 제시한 계약에 비해 그렇게까지 크지 않다고 한다. 누가봐도 동일 로스터를 유지하면서 얻는 이득 대비 큰 이익이 아니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제우스가 재계약을 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과거 팀의 유지를 위해 거액의 제안을 거절했던 바 있다.

 

 


 

일단 기사에서 공개된 타임라인에 따르자면, 애초에 제우스는 T1과 재계약할 의사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책임자들을 바람맞힌 것과 다름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건 다소 놀라운 일이다. 이는 기존 스포츠 판에서도 말이 많은 행위인데다, 특히나 판이 좁은 e스포츠에서 그런 행동을 보였다니. 이는 사실상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는 너희와는 일 안한다는 식의 선언에 가까운 행동인데, 해당 구단의 유스출신 스타가 그랬다니 팬들의 입장에선 더 황당한 것.

 

더군다나 한창 전성기의 월즈 우승자 출신 플레이어가 갈만한 팀은 그렇게 많지 않다. T1을 포함해 국내에 세 팀 정도. 그리고 중국에 세 팀 정도. 그런데 중국은 최근 한한령과 게임 때려잡기로 인해 급격히 전망이 어두워져 내년 롤드컵 이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중이라 결국 국내에 비중을 둘 수밖에 없는데, 정작 국내에서도 정상권 팀들은 나름 합을 맞추며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T1과 그렇게 관계를 끊어내는 게 막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더욱이 T1은 그간 멤버들을 놓아주는 부분에 있어서는 비교적 관대한 구단으로 평가받아 왔다. 유럽의 구단처럼 계약으로 얽맨 다음에 커리어를 망쳐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그냥저냥 보내줬던 일도 있다. 나중이 되고보니 T1과 헤어지는 과정에 대해 구단측에 호의를 표하는 전 선수도 있었다. 자타가 T1을 명문구단이라 평하는 데엔 이런 영향도 있다.

 

그 T1이, 역대급 업적을 세운 멤버를 사실상 삭제하다시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 안하는 것에 대해 신뢰를 받고 있는 구단이 일을 하는 거 보니 뭔가 일이 있어도 크게 있었다 사람들이 수근거린다. 심지어 "공식적인 의견은 아니지만" T1이 해당 계약과 관련하여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는 썰마저 돌고 있다. 여지까지의 팀원과 구단의 이별과정과는 뭔가 많이 다르다는 것.

 

실제로 저 정도의 위상과 인기를 지닌 멤버가 팀을 나가는데, 제대로 된 작별인사가 없다는 것은 팬서비스가 특히나 중요한 e스포츠에 있어서 더 특이한 일이다.

 

 


 

 

T1은 이번 재계약 실패로 잃은 것이 많다. 제오페구케가 깨진 것에서 오는 손해와 타격도 타격이지만, 공공연히 재계약을 천명하던 상황에서 다른 곳도 아닌 국내 경쟁 구단, 그것도 (일단 현 시점에서 기사나 썰 등으로 알려진 바로는) 특별히 계약조건상 우위에 있다 평가되지도 않는 이들에 의해 깨졌다는 건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리고 하나의 팀으로 묶어두어 상대적으로 편하게 계약을 지속시킬 수 있는 환경이 박살난 것은 구단의 운영 측면에서도 딱히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절대적 상수라고 할 수 있는 페이커가 있는 상황에서, 그에 걸맞을 정도로 영향력 있고 인기있는 멤버들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위험부담이 큰 일인지에 대해 알아 버렸다. 과연 이것이 T1만의 실패일까?

 

제우스가 잃은 것은 누군가의 말처럼 T1의 색이 빠져 버린 것이다. T1은 명문구단이다. 비단 롤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e스포츠에 있어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위로는 임요환이 있고, 옆에는 페이커가 있다. 이 둘만으로 다른 그 어떤 구단과도 차별화되는 스탠스를 취할 수 있으며, T1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저런 혜택이 주어지곤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T1이 사실상의 제우스 지우기에 들어갔다. 그리 좋지 않게 헤어진 대해서도 이런 행동을 보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다. 유달리 수명이 짧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e스포츠판에서 특정 구단- 그것도 명문으로 분류되는 T1과 척을 진다는 건 사실 좋은 일은 아니다. 이건 T1과의 관계만 불편해진다는 소리가 아니다. 제우스 정도면 충분히 팀의 대표격 얼굴로 키울 수 있는 선수인데, 다른 팀에서도 이것을 하기가 꺼려지는 상황이 닥친다는 것이다.

 

 

 


 

좋게보자면, 서로 너무 잘 나가서 생긴 이별이다.

 

T1은 이제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위해 나선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쉬는 시간이라는 것은 존재치 않는다. 반대로 제우스는 T1이라는 둥지를 떠나 자신이 어떠한 선수인지를 대중에게 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른 바 증명의 시간이다.

 

우리가 스포츠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유가 제시되지만, 스포츠는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낭만을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콘텐츠기 때문이라고 한다. 힘든 고난과 역경을 떨치고 이윽고 성공에 이르는 과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을 준다.

 

e스포츠에서 어지간해선 생기기 어려운 프렌차이즈 스타가 등장하고, 이러한 이들이 뭉쳐 동일한 멤버가 형성되고, 그들이 고난을 떨치고 연속으로 최고의 자리에서 증명하는 것은 그 결과도 결과지만 과정에서도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이 로스터가 깨진 것에 대해 단순히 팀이 약화되어 아쉽다는 수준 그 이상으로 이야기가 나오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e스포츠가 기존의 스포츠와 비교될 정도로 꾸준하고 일관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뭐 여하튼 일단 양자는 서로 세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제우스 측은 입장문의 발표를 할 것이며 여론이 계속해서 안좋게 돌아간다면 협상과정 전부를 공개하겠다고 밝혔고, T1측은 대표이사가 관련된 질의도 넷상에서 받겠다 한 상태. 과연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