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일기에 밥 먹은 이야기나, 날씨 이야기, 학교와서 공부한 이야기같은 것은 적지 말라고 어린 시절에 배운다.
뭐 대단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글쓰기의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 그리고 일기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소재들을 쓰는 걸 피하라는 소리였을 것이다. 이해는 간다.
- 8월 1일. 오늘 날씨는 더웠다. 너무 더워서 차가운 음료수를 다섯 캔이나 먹었다. 그런데도 더워서 저녁은 냉면을 먹었다. 학교에 갔다오는데 땅에서 아지랑이가 올라왔다. 너무 덥다. 오늘의 일기 끝.
-8월 2일. 오늘 날씨도 더웠다. 너무너무 더워서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그런데 집까지 반도 못왔는데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서 그만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너무 아깝다. 오늘의 일기 끝.
...뭐 이런 식으로 한도 끝도 없이 소재를 늘릴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초등학교 저 학년이 서순이나 더위라는 소재 하에 저 정도로 디테일을 바꿨다면, 그것도 나름 센스가 있는 거긴 하겠지만... 여하튼 일기라는 것이 그날의 하루를 되돌아보며, 의미를 부여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저런 식으로 소재를 반복하는 건 역시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자... 지난 장마 이후 날씨 이야기는 두 번째다.
정말 살벌하게 덥다. 분명히 어린 시절에도 더위로 고생한 기억은 있다. 2020년인가 2019년인가 날씨가 너무 더워서 난리가 났던 적도 기억한다. 그런데 왜 요즘이 더 덥게 느껴질까? 단순히 과거미화와 비슷한 원리 때문에 지금이 더 힘들다 여기는 것 때문일까?
실제로 부산 어느 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습도를 포함한 체감온도의 경우는 과거보다 더 높아졌다고 한다. 실제로 올해 열대야는 관측 역사상 특기할 정도로 높고 오래지속되고 있다고 하며, 하루 중 가장 낮은 기온이 30도에 달하는 날까지도 생기는 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덥고 습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기온이 높아진 것과 엮이며 훨씬 견디기 어려운 무더위가 되어 버린 것. 그래서 나름대로 이전에 비해 훨씬 더 온열질환에 대해 대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피해사례가 점점 확대되고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전엔 6, 7, 8월을 여름으로 봤다면 이젠 4월부터 11월까지를 여름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니까. 인체는 항상성을 유지해야한다. 그래서 한계점에서의 1도는 단순히 1도가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가 된다.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었다. "올 여름이 앞으로 있을 여름 중에 제일 시원한 계절이다"라고. 정말 그 말대로라면 두렵기그지없다.
중간이 없다. 비가 쏟아지거나, 미친듯이 덥거나 둘 중 하나다 이제.
예전에 "나는 더위에 꽤 강하고, 비 맞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더위에 강하다 이야기하고 다니는 건 군대 갔다온 다음에 완전히 접어버렸고, 비 맞는 걸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비가 무슨 스콜처럼 내리는 걸 경험한 이후로 집어치워 버렸다. 진짜 너무 더울 땐 가만히 널부러져서 행동할 기운을 모으는 것의 중요성을 알아버렸다는 것이고, 물리적으로 두들겨패는 비는 호오를 가리는 여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소리다.
진지하게 한국에 시에스타를 도입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정작 문제는 이 시에스타가 필요한 환경의 사람들은, 단순히 그늘에서 쉬는 걸로 감당이 안되는 습도 속에 있기 때문에 결국 에어컨이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거다. 사과 등의 특정 과일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올라간 기온은 앞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앞으로 한국 내에서 무난히 수확할 수가 없으니 제사상의 구성같은 것도 슬슬 바꿔야 한다는 거다.
한국만의 환경에 기인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