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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2] 약속의 시간 금요일 오후 5시

알숑규's diary 2024. 11. 23. 09:00

제우스와 관련하여 에이전시의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누군가가 발표가 언제될 것 같냐고 물어봤다.

 

나는 대충 "금요일 오후 5시쯤에 나오겠지. 안나오면 다음주나 되어서야 나오고." 라고 했고, 실제로 그 시간을 즈음해서 발표가 났다. 그는 내가 발표시간을 맞춘 게 신기하다고 했는데, 사실 뻔하다면 뻔한 부분이다.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 등에선 "약속의 시간"이라는 표현이 있다. 바로 금요일 오후 5시로, 사실상 주의 끄트머리, 주말에 접어드는 시점에 발표를 하는 경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크게 세가지 이유가 있다.

 

 

참고로 이하의 내용은 관련 이적사가와는 관련이 없는, 일반 상식선에서의 내용이다. 법적으로 조치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 것과는 별개로, 생각보다 이걸 적잖은 사람이 모르는 것 같아서 작성해 본다.

 


 

첫째. 상대적으로 이목이 집중되지 않는 시간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비판을 피하기 쉽고, 무엇보다 기존 언론의 성질상 깊게 다뤄지지 않는 다.

 

사회는 주중의 시간을 기준으로 흘러간다. 금요일 오후쯤되면, 주중의 일들을 마무리하고 주말에 진입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퇴근을 준비하고, 뉴스나 TV뉴스의 인터뷰도 주중에 따놓은 것을 내놓는 것을 마무리하고 다음주를 준비한다. 실제로 직장에서 퇴근 시간 즈음에 새로운 일이 생기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혐오하는가. 취사가 가능한 선택 사항이 금요일 오후 시간대에 발생한다면, 우리의 우선사항은 뒤로 밀리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레거시 미디어가 기능하지 않는 시간대라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신문이 최대의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조간신문이고, 00년대 이전까지만해도 tv뉴스는 종이신문의 퀄리티를 쫓아오지 못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바 있다. 도저히 이전만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종이신문의 위상이지만, 여전히 대통령을 낙마시킬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소리도 나온다. 지면상에서 다루는 것 이상으로 강한 것이, 종이신문에서 다루지 않는 힘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지면에서 다룰 수 없게 하는 것은 아주 큰 효과를 가진다.

 

 


 

둘째. 여론이 형성되는 시간을 벌어준다. 마찬가지 의미로, 반대하는 여론이 희석되는 경우도 포함된다.

 

누군가는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그 자체보다는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받게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사회적 분란의 절대다수는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누구나 동정을 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이들만을 뭉치게 하는 것이, 불특정의 다수가 자기의 편을 들게 만드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효율적이고 효과도 좋다.

 

이미 특정한 누군가를 편들고싶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의견을 뒷받침해줄 발표내용 그 자체면 충분하다. 애초에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당사자말고는 알 수가 없고, 이것에 대해 유의미한 힘이 실리는 것은 법적인 판결 그것도 대법원 판결이 난 이후이다. 이게 바로 사실관계가 당장은 중요하지 않다 하는 이유다. 시간을 끌려고 마음만 먹으면 수 년 단위는 가볍게 끌고 갈 수 있는 법정판결을 기다리게 되면, 찬성이건 반대건 여론은 이미 힘을 잃는다.

 

반대로 일찌감치 형성된 여론은 사실관계의 평가에도 영향을 준다. 심지어 재판조차. 실제로 우리는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형성된 여론으로 인해 제대로 재판에 가지고 못하고 꺾여버린 사람들이나, 정작 재판에는 이겼는데 당시에 비난받던 여론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묻혀 버린 사람들, 심지어 재판 과정에서 판결의 실익이 없다며 최소한의 배상도 받지 못한 사례마저 알고 있다. 심지어 극도로 예외적인 사안이지만, 법원이 여론에 눈치를 보고 판결을 내린 케이스조차 있다.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데, 여론이 이래서 유죄 내린다. 미래에 나를 비난하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라는 식의 황당한 판결이 실재한다.)

 

상술했듯, 사회는 주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여론은 주중에도 계속해서 확대되고 자리잡는다. 이에 반대되는 논리와 여론은 반대로 중심이 될 발표가 없다면 쉽게 힘을 잃는다. 그래서 이 여론을 일방적으로 형성하는 이틀이라는 시간이 중요한 것이다.

 

 


 

셋째. 피드백을 받는 시간 벌기. 본인들의 논리 강화와 법적 절차에 이르기까지 상대방의 시간 유예시키기.

 

현대사회는 복잡하기 때문에, 특정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본인들만의 의견 표명으로 모든 상황이 정리될 수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위해 제3자의 보증을 받는 형태로 보강하고는 하는데, 이때 제3자와 자신들의 의견이 대치되는 형태로 나오면 자승자박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그에 따라 함께 입을 맞춰야 하는데, 주말이라는 시간은 좋은 시간 벌이가 되어 준다.

 

더 나아가 분쟁이 더욱 심화되었을 경우, 결국 법적인 조치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상대방이 대응하는 시간을 줄이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실제로 물론 법적으로 엄밀하게 따지면 실제 업무시간을 기준으로 판단을 하기에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상대방이 본인들이 준비한 것 대비 이틀동안 공식적으로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자신과 대치되는 여론을 통해 자신들의 논리의 보강점을 파악할 수 있다. 내부에선 확인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외부의 공격을 통해 파악하고, 그 이틀사이에 이 논리를 보강해 역으로 상대방의 헛점을 공격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에 구애되지 않는 인터넷 기사 등이 활성화되고, 주말 근무 등도 익숙한 단체 등이 있긴 하지만, 이 약속의 금요일 오후 5시는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결국 여론을 형성하고 지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 주중을 살아가니까.